25. 좋은 상품과 좋은 농부

박종범
2021-02-08



농사펀드가 생각하는 좋은 상품과 좋은 농부에 대해

농사펀드가 생각하는 좋은 상품은 특성(특별한 성질)이 있는 상품입니다. 
특성은 거창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달다 / 아삭하다 / 향이 깊다 / 크다 / 부드럽다 / 효능이 있다 / 손에 묻지 않는다'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먹거리의 특성을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품종, 환경, 기술'


'품종'은 그 자체가 다른 것과의 구별된 무리를 뜻하기도 하고 그것이 갖는 고유의 속성은 먹거리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품종에 따라 고유의 크기, 맛, 형태, 질감 등이 결정되는데 증량 중심의 농산업 시대를 거치며 생산성이 우선되다 보니 종의 다양성은 약해졌습니다. 심지어 내가 심는 씨앗의 상표명은 알아도 진짜 품종명은 모르는 농부도 있습니다. 병충해에 강하고 잘 안 죽어서, 심으면 수확인 많이 된다고 해서 심는 경우입니다. 그 품종이 가진 특성을 모르니 농사지은 결과는 총 수확량이 몇 kg 인지로만 결정되고 평당 수확량이 많으면 농사 잘 짓는 사람이 됩니다. 농사기술도 품종이 가진 특성 발현보다는 수확량에 초점을 맞추어 불균형 발전을 하게 됩니다. 

농사펀드가 자신이 심는 씨앗, 기르는 것의 품종이 무엇인지 알고 그 특성은 무엇인지 아는 농부(생산자)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런 농부들의 먹거리는 발전할 여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환경'은 품종의 특성을 발현시키거나 그중 특정한 성질을 더욱 강화하는데 이바지합니다. 

자르는 곳의 해발고도, 온도, 습도, 강수량,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바람의 성격 등은 생산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모든 생물은 자라는 환경에 적응하거나 대응하며 살아남고 발전합니다. 서리를 맞은 배추가 더 달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겨울에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이파리에 수분을 날려버리고 당분을 축적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노출된 환경이 어떤지, 다른 곳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는 이유입니다. 


'기술'은 보통 '품종'과 '환경'의 결핍을 보완하거나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합니다. 

적화나 적과를 하는 방법, 가지치기하는 방법, 퇴비를 숙성시키거나 만드는 방법, 비료를 주는 시기와 양, 물을 주는 방법 등 환경이나 품종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합니다. 가끔 클로렐라 농법, 유황 농법이라는 이름으로 기술을 최우선으로 부각하며 만능으로 여기는 농부가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농장의 경우 품종과 환경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기술은 품종과 환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미신과 같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기술은 경험, 경력과 비례하기도 체계적으로 실험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젊은 농부들을 보며 꼭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먹거리의 특성은 위에서 말한 이 세 가지의 조합으로 결정됩니다. 

농사펀드가 좋은 상품을 보는 방법은 품종이 무엇인지, 농사짓는 환경은 어떤지, 어떻게 농사짓는지 묻고 확인하는 것이 결국 다입니다. 매년 씨앗의 상태, 변하는 환경, 기술이 적용 정도에 따라 맛, 크기, 질감 등 먹거리의 특성이 달라지겠지요. 농사펀드 입장에서 좋은 농부는 이런 차이를 눈치채고 조절하며 특성을 만들어 내는 농부입니다. 

농부라는 직업, 농사라는 행위 자체를 존경하긴 하지만 농부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사람을 살리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 모두를 존경하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농부. 그것을 결과로 만들어 내는 농부를 좋아합니다. 저 역시 그런 기획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그렇기에 좋은 먹거리를 먹기 위해서는 농부들이 소명의식을 갖고 농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농부를 믿고 지지해주는 소비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